히로스에 료코
1. 개요
일본의 배우. '''1990년대 일본의 국민 여동생이자 일본 전세대에게 사랑을 받은 마지막 배우'''로 불리우며 보이쉬한 단발머리의 상징 같은 인물로, 일본에서 어린 연예인이 단발머리를 하면 일단 료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5]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일본 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전성기가 지난 지금도, 일본 여배우를 이야기할 때 으레 료코와 영화 비밀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히로스에 료코에게 큰 손실로 남았던 와세다대학 사태를 비롯해, 여러 루머들이 한국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사실 말 그대로 '물 건너 이야기'이기도 했을뿐더러 그 당시는 SNS가 발달된 시대도 아니었으니 소식도 지금보다는 느리기도 했다.
일본 문화 개방 이후 초창기 한국에 개봉된 일본 영화 중 가장 유명하고 흥행에 성공한 러브레터, 철도원, 비밀 중 두 작품이 료코가 출연한 영화였기에 일본 영화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도 영화 정보 프로그램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즉, 일본 영화를 우리나라에 알린 선구자격인 배우라 할 만하다.
소속사는 전성기부터 계속 'FLaMme'이다. 원래 히로스에 료코를 이롭게 하려고 만들어진 회사로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토다 에리카 같은 인기 연기자를 육성하는 등 유능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익명의 8년차 료코 팬은 '소속사에 아쉬운 건 하나도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줄여서 쓸 때 일본에서는 '広末'(히로스에), 한국에서는 '료코'를 사용한다.
2.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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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료코 리즈시절. '''일본의 마지막 국민 여동생'''
1994년 여드름약 CF모델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데뷔하여, 통신회사 도코모의 삐삐(…) 광고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세계 첫 사이버 가수[6] 인 다테 쿄코(DK96)의 디자인 베이스가 되었다고 하는데[7] , 그보다는 나가세 레이코 쪽이 더 열심히 모사해냈다는 평. 이쪽은 확실히 히로스에 료코가 인기를 끈 이후이기도 하고. 1997년에는 '비치보이스'라는 인기드라마에서 건강하고 귀여운 츤데레 소녀 역을 연기하였다. 그리고 타케우치 마리야가 만든 '진심으로 사랑하기 5초 전'이라는 곡으로 가수로 데뷔하였는데, 이 노래는 10년이 넘도록 히로스에 료코의 주제가처럼 쓰일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말 좋아해!'라는 곡으로 그해 홍백전에 출전 하였다.
이 97년에는 '히로스에 현상'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방송 광고의 호감도 조사결과 최고 호감도 광고 10개 중 7개가 히로스에 료코의 광고였을 정도. 이때 붙은 칭호가 'CF의 여왕'. 일반적으로 단순한 인기도의 측면에서 히로스에 료코의 전성기를 말할 때는 1997년을 의미한다.
1998년부터는 엄청난 인기와 CF독점에 의해 발생한 파파라치 및 '스캔들 작가'들이 어느 정도 건수를 올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명문 '''와세다대학에 입학'''을 추진하는 것이 밝혀져서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학전형이 '자기 추천'[8] 이라는 미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남들 뼈빠지게 공부해서 가는 대학을, 인기 좀 있다고 날로 먹느냐?!'는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와세다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아직은 축하하는 분위기에서 화제로 다루어졌고, 1999년 초의 무도관 콘서트도 성황리에 마치며 아이돌로서의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3. 와세다대학 사태
1999년 4월, 히로스에는 "자기 추천 제도"를 통해 와세다대학 교육학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자, 사회 현상이나 다름없던 료코가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매스컴을 통해 연일 대서특필 되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반향도 엄청 났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일단, 와세다대학의 지원자수가 급등했다. 1998년에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가 나왔던 지원자 수가 그녀의 합격연도인 1999년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대학 합격자 발표는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고, 와세다대학 출신인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가 합격을 축하하는 코멘트를 발표하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그녀의 합격 소식에 나라가 들썩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던 그녀조차도 연예인 특례 입학을 향한 비난에선 자유롭지 못했으며, 특히 다른 수험생들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지적은 대학 생활 내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여기에 와세다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이미 생성되어 있던 비난 여론이 더 커지게 된 계기가 있으니, 이른바 장기결석 논란이다.
'''"히로스에 료코가 입학식 불참부터 시작해서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와세다대학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가자, 그녀는 "드라마 립스틱의 촬영 스케줄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비난 여론이 거세진 후였다. 히로스에는 해당 드라마의 촬영을 끝내고 나서야 첫 등교를 했으며, 이후 바쁜 연예 활동으로 인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는지 2003 년, 여배우 일에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자퇴하였다.
와세다대학에 합격하기 전까진 시덥잖은 스캔들 기사 말곤 까일 거리가 전혀 없었던 료코였는데, 이 일로 인해 안티가 많이 생겼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혹 이 때 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임팩트가 어지간하긴 했나 보다... 결과적으로 료코의 커리어를 놓고 보자면 다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2001년 대량 스캔들 사태
와세다대학 사태로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료코는 여전히 인기 연예인이었다. 1999년 영화 "철도원"과 "비밀"로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2000년에도 각종 인기 드라마에 출연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에 다수의 스캔들 기사가 여러 매체에서 연속적으로 나오면서, 료코의 이미지가 극단적으로 안 좋아지게 된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세야 유스케와의 동거설 역시 이미지 실추의 원인 중 하나. 실제로 2001-2002년은 작품 목록 이외의 활동이 기록되지 않은 매체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위키피디아의 료코 항목.
이 시기의 주요 기사들의 내용은 불법적이거나 반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택시비를 내려고 보니 지갑도 전화도 없어서 일단 명함을 주고 내렸다.' 같은 일회성 사건의 앞뒤에 남자 문제를 덧붙이는 형태로 문제화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료코가 도대체 뭘 잘못했냐'라고 물으면 딱히 남는 게 없다. 이후에 이 시기의 료코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있을 때에도 단일 사건을 들기보다는 '기행'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터넷 쪽에서 떠돌았던 이야기나 '주요하지 않은(통용되고 있지않은)' 기사들은 불법적이고 반윤리적인인 내용이다. 여자에게 험담할 때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이 있다고 봐도 될 듯. 다만 그 내용이 황당한지라(뤽 베송이랑 사귀었다든지) 안티용 떡밥으로 쓰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멸했다.
당시 야쿠자가 관련된 '바닝프로덕션'이 자사 연예인과 경쟁적 입장에 있는 료코에 대한 악담들을 뿌렸다는 루머가 있다. 이는 2001년 당시의 이상스러운 여론 공격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고, 히로스에 료코가 바닝을 떠나면서부터 생겨났기 때문이며, 견디지 못한 그녀가 바닝으로 돌아오자 악성루머들이 끊기고 다시 TV출연을 한 것 때문에 설득력을 가지고 통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이 자체도 루머. [9]
한국에서는 "이젠 양다리까지 걸치니 입원시켜라!"라는 기사의 '''제목'''을 심각하게 오역한 도시전설급 루머가 있지만 일본 쪽에는('''더 심한 건 돌았어도''') 없는 국산 루머(...)이다. 지금은 삭제되었지만 원래 출처는 네이버 지식in인 듯.
5. 국민적인 아이돌에서 성인 연기자로의 이미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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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부터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소속사에게 머리기르는 것을 금지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영화 "연애사진"이나 드라마 "모토카레(전 애인)", 야후BB의 CF 등에서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와는 다른 성숙미를 가진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해 가을 마침내 '''와세다대학을 자퇴'''하여 악연을 끊었다. 연말에는 유망배우의 장이라는 츠카 코헤이의 연극 "막말순정전"과 "비룡전"의 주연을 동시에 맡아 호연을 보인다.
한국 팬들에게 유명한 료코의 대표작은 '사필여'나 '비밀' 등 진지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이미지도 청순하고 신비로운 쪽이었지만 의외로 일본에서는 꽤 근래까지 아이돌시절의 이미지에서 이어지는 가볍고 밝은 캐릭터로 캐스팅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굿' 바이'가 아카데미 상을 받은 이후 왕년의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제대로 된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로 진지한 연기를 하는 정극 캐릭터로 나오는 일이 많고, 특히 30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은 어머니 역할을 맡는 일이 잦아졌다.
6. 한국에서의 히로스에 료코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던 일본 배우를 이야기할 때 히로스에 료코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청소년 중에 일본 문화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외모에 끌려 료코의 영화나 드라마 한 편쯤은 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료코가 한국에서 처음 인지도를 얻은 계기는 영화 철도원이 개봉했을 때 걸렸던 포스터이다. 철도원을 안봤어도 포스터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당시 일본 드라마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도 히트한 썸머 스노우의 여주인공으로 일본 드라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서 히로스에 료코 붐이 분 것은 영화 비밀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정식으로는 일본보다 3년 늦은 2002년에 개봉했는데 관람객 50만 명 정도의 흥행을 올렸다. 3년이나 늦게 개봉한 작품이 50만명이나 기록한 것은 대성공을 의미한다. 작성한 것처럼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비밀>을 봤지, 대다수 대중은 료코 자체를 몰랐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료코가 인지도를 얻고 <비밀>이 입소문을 타면서 당시 중고딩 및 대학생, 20대 관객이 몰려 저 관객수를 올렸다. 현재 일본, 중국 영화는 한국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고 2000년대 초반 역시 그나마 와호장용, 무간도, 소림축구, 성룡(하지만 사실상 헐리우드) 및 극히 적은 작품들만 성공하던 시절이었다. 비밀 이후 등장한 대규모의 료코 팬이 지금도 한국 일드 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 비밀을 기점으로 프로필이나 개인 홈피에 료코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증가했다. 만화가 박무직도 료코의 팬임을 밝혔다. 아예 작품 속에 뜬금없이 히로스에 료코 사진이 마구 등장한다. 샴푸 광고라든가. 홍진호의 개인 홈피에도 료코 사진방이 있었다.
2002년 쿠사나기 츠요시와 같이 단편 드라마 '미안해요'에 출연해서 전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했다. 두 사람의 어설픈 한국어 대사들이 인상적. 그 뒤 츠요시와의 인터뷰도 모두 한국어로 소화. https://www.youtube.com/watch?v=AgHtaQkRbS0
2002년 말에는 대한민국 팬들만의 팬미팅을 추진하여 성사시키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팬미팅이 히로스에 료코 최초의 팬미팅이었고, 2008년에 공식 팬 클럽 'RHfriendle'이 해체되었기 때문에(...) 최후의 팬미팅이 되어 버렸다. 료코 결혼 이후에 '료코 세대'들은 아마도 일본 매체 기반의 취미에 눈뜨고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한국 오덕계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해외 연예인중 유일하게 김포공항을 마비시킬 수 있는 연예인이라고 불렸었다. 실제로 전성기가 한참지난 2013년 공식방한때 조차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몰렸었다.
한국 내의 인기를 바탕으로 2003년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되었었다. 하지만 결국 출연을 하게 되는 것은 료코가 아니라 히라야마 아야.
대한민국에선 SBS에서 방영한 연애사진, 레옹 와사비에서 '''정미숙''', 철도원에서 박소라, 굿바이에서 이승주이 맡았는데 팬들 대부분은 정미숙의 히로스에 료코를 좀 더 좋게 평가하고 있다. 굿바이에서 이채정 성우가 맡아서 왜 정미숙 성우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정미숙 성우가 맡았던 시기의 히로스에 료코는 발랄하고 통통튀는 성격의 연기를 주로 했고 굿바이의 료코는 굉장히 정극의 여성상을 연기해서 아마 KBS쪽 피디는 이런 정극형 연기엔 이승주 성우가 어울린다고 판단했던 거 같다.
2010년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제로 포커스'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되었고 이 영화의 일부는 부천에 있는 판타스틱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히로스에 료코도 당연히 참여. 한국 스태프들의 열정과 친절함, 맛있는 한국 음식들이 인상 깊었다고 인터뷰를 남겼다.
2011년 한효주가 히로스에 료코의 소속사와 계약을 해서 일본 활동을 했었는데 당시 두 사람이 동반 화보를 찍기도 했다.
2013년 1월 30일부터 2월 3일까지 한국에서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의 무대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쿠사나기 츠요시, 차승원 등과 공연.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고 예전에 꽤나 인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가 없다. '나에게 불의 전차를' 기자 회견이 한국 언론과의 유일한 인터뷰인 듯 하다.
한국에 정식 수입이 된 그녀의 영화는 딱 10편이다. 철도원, 비밀, 와사비, 연애사진, 버블로 고, 굿바이, 폭렬닌자 고에몬, 플라워즈, 제로 포커스, 하나와 미소시루. 특별 출연을 포함하자면 하나와 앨리스도 있다. 이 중 하나와 미소시루는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 서비스 영화로 제공이 되기도 했었다.[10]
6.1.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
한국팬과 일본팬의 가장 큰 차이는, 일본팬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돌 시절의 팬이었다가 잔류하는 형태를 취하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특히 비밀로 인해, 배우로서 팬이 된 경우가 많다.[11]
일본에서는 대표작이 없다시피 하지만 한국에서는 항상 3가지 넘게 꼽힌다.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이 대표적으로 한국 팬들에게는 부동의 원톱이요, 일본 드라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손꼽았던 명작이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가 큰 히트작은 아니며[12] , 무엇보다 이 작품은 '''와타베 아츠로의 것이지 히로스에 료코의 것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일본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주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꼽는 히로스에 료코의 대표작인 립스틱의 경우도 와세다대학 사태 도중에 방영하고 있었던 데다가 '소년 감별소'라는 소재의 무거움, 한 번 보고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려운 난해함 등으로 인해 대중적인 인기는 없었다.
영화인 비밀을 포함하면 3가지가 되지만 드라마로 대체할 경우 썸머 스노우나 2000년도에 방영했던 <속도위반 결혼(出来ちゃった結婚)>이나 이것저것 각자 취향대로 드는 편.[13]
7. 출연작품
7.1. 드라마
7.1.1. 연속 드라마
7.1.2. 단편 & 스페셜 드라마
7.2. 영화
7.3. 애니메이션
7.4. 기타 연예 활동
[1] 2010년에 아티스트 CANDLE JUNE(당시 본명: 이즈츠 준井筒 順)과 결혼하였는데 이때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2]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에서 성장했다.[3] 양초 예술가 겸 평화 운동가. 원래 성은 이즈츠(井筒)였으나 히로스에와의 결혼으로 아내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4]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5] 아즈망가 대왕에서도 관련 네타가 등장한다. 타키노 토모 왈, "긴 머리에 섹시한 미네 후지코는 안 되지만, 히로스에 정도면 가능하잖아!"[6] 여담으로 국내에서는 사이버 가수 아담, 루시아 등의 사이버 아이돌이 만들어졌으나, 후달리는 그래픽 성능과 함께 이런저런 사람 얼굴을 섞어만든 어중간한 외모 때문에 손발이 오글오글해 '''망했어요'''.[7] 그런데 다테 쿄코의 경우는 등장이 1996년이라서 히로스에 료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 맞는지 좀 애매하다.[8] 이 제도에 대한 반발은 2006년 문근영의 성균관대학교 입학 때 '''다시 재현될 뻔했다.'''[9] 참고로 일본에 살았다는 사람이 주장하기를 이런 루머들이 영향력이 없어서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10] 더이상 한국에서 일본 영화는 흥행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명탐정 코난, 짱구는 못말려 등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양국 모두 큰 인기를 얻지 일반 영화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저조하다. 딱 10편이 아니라 무려 10편이나 수입된 것이다. 그것도 료코라는 앞도적 인지도 때문이다. 당장 CGV. 메가박스에서 상영 중인 영화 목록을 봐도 한국과 영미 영화가 절대적으로 상영관과 관객점유율을 보인다. 물론 입소문을 타서 일상, 로맨스 물이 흥행하는 케이스가 있으나 이런 영화는 정말 극히 일부인 경우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배우인 기무라 타쿠야 주연 작품도 '''매번''' 국내개봉하지 않는다.[11] 사실 당연한 인식이다. 애니, 만화를 제외한 나머지 일본 문화는 김대중 정부부터 본격 개방되었기에 일본에서 유학 및 거주자 혹은 매니아층이 아닌 이상 일본 영화, 일본 드라마 등은 접하기 힘들었으며 당시 대다수 사람들도 큰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료코 전성기를 실시간으로 인식하지 못함은 당연한 결과였다. 즉 위 문서에 미리 CD로 본 사람들은 이전 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던 소수 사람들이며 일반적인 대중은 그 이전에 료코라는 일본 배우를 알지 못했다.[12] 매니아들의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 드라마의 특성상 소수 매니아용 드라마는 실패작으로 취급받는다.[13] 여담으로 <속도위반 결혼>은 당시 국내에서 일본 드라마치고는 거의 없었던 MBC 드라마넷에서의 자막방영을 하였다.[14] 7화[15]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 원작이다.[16] 마지막회에서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출연[17] 작중에선 이미 사망한 캐릭터라 회상씬에만 등장하여 단역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작품의 핵심인물이므로 조연으로 표시함[18] 1화 초반에 등장[19] 3화[20] 2000년작 오야지와 방송사(TBS), 주연배우(타무라 마사카즈), 방송요일(일요일)이 같다. 두 작품 다 가족극이라 분위기도 비슷하고, 등장인물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오야지 시즌 2[21] 오야지에서도 타무라 마사카즈의 딸로 출연했다.[22] 매회 등장인물이 바뀌는 옴니버스 드라마로 추정.[23] 1화[24]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원작자 '이치카와 타쿠지'가 이 영화를 각색해 '연애사진-또 하나의 이야기'(우리나라에서는 '연애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정발)라는 소설을 썼고, 이 소설 버전이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로 또다시 영화화되었다.[25]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과 콜라보레이션. 해당 영화의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해당 영화의 각본 및 감독을 맡은 우치다 켄지가 이 작품의 각본을 맡았다). [26] 한국판 박선영. 박신희 성우가 담당했다. 히로스에 료코는 해당 영화에서도 카나에 역을 맡았고 콘도 역을 맡았던 카가와 테루유키 역시 이 작품에 참여하였으나 사쿠라이 역을 맡았던 사카이 마사토는 참여하지 않았다.[27] 차승원, 김응수, 쿠사나기 츠요시, 카가와 테루유키와 공연[28] 쿠사나기 츠요시가 한국 남자/일본 남자로 분해 상황극을 연출. 그들의 한국어 연기를 볼 수 있다